신년운세(新年運勢). 해가 바뀔 때면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한 번쯤 봐 봄직한 것이다. 신년운세를 점치는 데에도 절대강자는 있는 법. 예나 지금이나 폭넓게 사랑 받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이 그것이지 않을까.
<토정비결>은 토정 이지함이 만든 비결로 '신수 석중결' 또는 '석중결(石中訣)'이라고도 불린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년의 신수를 봐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지어졌다. <토정비결>로 신수를 보던 것은 조선 후기부터 수백 년 간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세시 풍경이다.
"<토정비결> 각 괘는 한국적인 정신문화의 산물"
㈜케이티이에스(대표 김병혜)는 <토정비결>을 21세기에 걸맞게 '토정비결과 한국인'이라는 디지털콘텐츠로 재구성했다. 콘텐츠개발팀 이광용 과장은 "<토정비결>에 담긴 전통문화원형은 다양한데 현재 주술적인 요소로써 흥미를 끄는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토정비결>에 나타나는 각 괘(掛)는 가장 한국적인 정신문화의 산물로써, 500여 년 이상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토정비결>에는 운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디지털콘텐츠로 만난 <토정비결>은 유교, 불교, 민간신앙과 서민들의 생활규범 등 교육적인 가치가 포함된 우리 정신문화의 복합체 성격이 강하다.
이 과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고려청자와 석굴암, 불국사처럼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 자체로써 한국을 세계 속에 알리는 전통문화 유산을 꼽으라고 하면 의식주나 제사, 연중 행사처럼 일상에서 하루 하루의 역사를 만들고 지탱해온 것들과 관습 규범에서 전해오는 무형의 유산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토정비결>은 원본이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서민들의 의해 전해 내려오는 내용을 역사 전문가들이 기술해 놓은 책자가 전부이다. 또한 <토정비결> 책자는 거의 대부분 '신년운세' 등 주술적인 성격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장은 콘텐츠 개발을 위한 자료수집과 고증과정이 매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일반 서민들에 의해 전해 내려 온 내용으로 고증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어요. 민화도 중국과 일본의 그림을 모방한 것들이 많아 자료를 찾는 것도 매우 힘들었어요. 또한 콘텐츠 내용에서 20% 밖에 차지하지 않는 <토정비결> 집필에만 6개월이 소요됐는데 확실한 고증과 기초자료 분류, 분석 작업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과제여서 시간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토정비결>이 사랑 받는 이유는 전통서민의 실천윤리 때문
케이티이에스는 이러한 어려움을 한국민족문화연구원의 이재운, 대한 역학교육학회 상임수석고문 한중수, 단국대 동양연구소 전문위원 정석용 등 여러 전문가들의 폭넓은 참여로 이겨냈다. 한중수 고문위원이 <토정비결>의 괘 내용을 집필하면 다른 위원들이 고증을 담당하는 식이다.
케이티이에스는 <토정비결>이 현재까지도 일반 서민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전설이나 야사를 통해 토정선생에 대한 여러 가지 신비한 일화가 전해져 옴으로써 토정이 쓴 비결이라면 적중률이 높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예언서와 달리 보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누구라도 책자만 있으면 작괘법에 대한 이해와 일년 신수를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비교적 적중률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토정비결>의 점괘는 144가지 밖에 없다. 아무리 조선조 중종과 명종 때의 인구가 적었다고 하더라도 <토정비결>이 지니는 점괘의 한정성은 분명 문제가 된다. <토정비결>은 운수를 보는 점괘로써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정비결>이 사랑 받는 이유는 단순히 운세를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실, 근면, 정직하면 길운이 오는 괘, 노력하여 성공하는 괘, 선행을 하면 좋은 일이 있는 괘 등 토정비결의 내용에는 전통서민의 실천윤리가 담겨 있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서민들이 사는데 현명한 판단을 하게 하는 교훈적 내용에 그 의미가 있다.
<토정비결>은 4언시구(四言詩句)로 이루어지고 그 밑에 한 줄로 번역되어 읽기 쉽게 되었으며 다른 점서와 마찬가지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 많다.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으니 귀한 아들을 낳으리라"는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좋지 않은 내용도 "이 달은 실물수(失物數)가 있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화재수가 있으니 불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되어 있어 일상생활에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절망에 빠진 사람도 희망을 갖게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생활을 하도록 독려한 것으로 평가된다.
"<토정비결> 이용한 한국적인 문화 상품 개발 절실"
<토정비결>은 기본적으로 주역의 괘로써 풀이한 비결이다. 하지만 주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주역의 괘는 64괘인데 토정비결은 48괘이며, 주역은 괘상이 424개인데 토정비결은 144괘이며, 괘를 만드는 방법도 연월일시 중에서 생시가 제외되었다는 점 등이 다르다.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주목을 끄는 운세 관련 콘텐츠. '토정비결과 한국인'은 어떨까. 이 과장은 "직접적으로 상업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제의 성격이 애초 관련 업계에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과장은 "<토정비결>의 각 괘를 이용한 가장 한국적인 문화 상품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토정비결>은 조선의 당파싸움과 사화가 난무하던 시기에 쓰여졌다. 이는 중국의 <주역>이나 <역경>의 내용이 형성되던 춘추전국시대의 불안했던 정치정세와 사회변동이 극심하던 때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점서(占書)가 민중의 울분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수백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도 삶에 대해 불안해 하기는 여전하다. 인터넷과 거리 곳곳에 신년운세니 XX비결이니 하는 것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토정비결>이 단순히 길흉화복 등 운세만을 전하지는 않더라도 사랑 받는 이유이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비결이 담긴 '토정비결과 한국인' 콘텐츠를 들여다 볼 필요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토정비결에 담긴 해석 예
굳이 운세에 주목하지 않더라도 '토정비결과 한국인' 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은 <토정비결>에 나타난 각 괘 내용이다. 괘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을 살펴본다.
乘龍乘虎 變化無雙(승룡승호 변화무쌍)
- 용을 타고 범을 타니 변화가 무쌍하다
용은 문장(文章)이고 범은 무예(武藝)의 비유이다. 용을 타고 범을 탔다는 것은 문무양과(文武兩科)에 모두 급제하였다는 뜻이다. 일세를 진동하는 영웅은 문무겸전하여 출장입상(出將入相-전시에는 나가서 장수가 되고 평화시에는 조정에 들어와 정승이 되는 것)하여 국가에 큰 공을 세운다. 비록 영웅은 안 되더라도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변화무쌍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경영면에 수단이 출중해서 크게 성공한다는 의미.
夢得良弼 眞僞可知(몽득량필 진위가지)
- 꿈에 어진 배필감을 만났으니 참인지 거짓인지 알겠더라
꿈속에서 아름다운 배필감을 만났다면 꿈속에서는 기뻐하겠지만 그 꿈을 깨고 나면 허무하기가 비할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꿈을 꾸고 보면 징조가 좋아 기쁜 일이 생기는 수가 있으니 꿈은 헛된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상을 이루면 이는 거짓이 아닌 참일 것이다.
有弓無失 來賊何防(유궁무실 내적하방)
- 활은 있으나 화살이 없으니 공격해 오는 적을 어떻게 막으랴
공격해 오는 적을 막을 수 없다면 화를 당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급히 서둘지 말고 만전을 기하기 위해 자금과 인력 등에 모자람이 없도록 미리 준비해 두고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다. 특히 자금난에 처할 수 있으니 자본 확보에 중점을 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