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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
깡통박사 2017-09-30 (토) 08:30 조회 : 3233

한국의 四柱命理學

김두규 /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1. 사주명리학의 형성과 전개

I.1 ‘운명 解釋學’으로서 사주명리학

한 개인 혹은 한 사회 집단의 운명을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와 노력은 여러 가지로 있어왔다. 흔히 길거리에 ‘동양철학’이라는 간판으로 많이 알려진 사주명리학도 그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사주 이론은 그 근원지인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 수용된 지 아주 오래일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도 수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과 전화를 이용한 젊은 세대의 ‘온라인 사주’가 ‘오프라인’사주 시장을 잠식하는 추세이다.

사주명리학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 역시 옛날부터 다양하였다.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허황한 미신’이라는 사주 부정론과 ‘인간은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사주 팔자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주 맹신론이 그 양단에서 서 있는가 하면, ‘좋은 것은 믿고 나쁜 것은 믿지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 등의 선택적 절충론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21세기에 들어와서도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에서조차도 사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존재론적으로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운명의 전개에 대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체득하면서,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사주이론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숱한 규명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최초의 유물론적 철학자로서 평가받고 있는 후한後漢의 지식인 왕충王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 없었던 그는 당시의 수도인 낙양의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고, 한번 읽은 책은 그대로 암기를 할 정도로 시대의 천재였다.

그러나 배경이 없던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불우한 처지에서 그는 《논형論衡》이라는 명저를 썼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식인들에게 읽혀지는 고전이다. 그런 그는 우리가 여기서 다룰 사주이론의 기본 범주인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상징부여를 거부했다. 그는 어찌 보면 현대 사주이론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냉소하는 지식인들―특히 서구 학문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들―의 선구자일 수도 있다. 그러한 왕충조차도 알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 맥없이 굴복하여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王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聖賢에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머리와 눈이 있고 혈기를 지닌 동물이라면 운명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빈천(貧賤)해질 운명이라면 부귀하게 해주더라도 禍를 만나고, 부귀해질 운명이면 비록 비천하게 해도 福을 만난다. (…) 귀하게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부자가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구해도 혼자 얻게되고, 일을 해도 홀로 성공한다. 빈천의 운명을 지닌 사람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 어렵게 벼슬에 이르고 겨우 승진하며, 어렵게 얻고 일을 성취하지만 잘못을 저질러 죄를 받고, 질병으로 뜻하지 않게 재산을 잃게 되어 지녔던 부귀마저 상실하고 빈천해진다.

이와 같이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 어떤 것인지 혹은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 가운데 東아시아에서 주류를 이루어 왔던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1.2 사주명리학의 체계

사주명리학이란 인간이 태어난 해年와 달月과 날日과 때時가 어떤 기운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시간을 한자漢字문화권에서는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표기하는데, 이것을 세로로 쓰기 때문에 글자들이 마치 기둥(柱)처럼 보인다. 이때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육십갑자로 표기하면 4개의 기둥이 되기 때문에 사주四柱라고 말한다.

동시에 사주에 사용된 글자 수가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팔자八字라고도 한다. 따라서 ‘四柱’와 ‘八字’는 같은 개념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이 사주팔자 속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추단推斷하는 체계를 말한다.예컨대 양력 2003년 3월 1일 오전 8시에 태어난 사람의 년, 월, 일, 시를 간지干支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08시 1일 3월 2003년
時柱 日柱 月柱 年柱 합하여 4개의 기둥(=四柱)
천간 - 丙 癸 甲 癸 4字
지지 - 辰 酉 寅 未 + 4字
四柱 8字

이렇게 육십갑자로 표기된 사주팔자에서 곧바로 인간의 운명이 도출되지 않는다. 몇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위에서 표기된 십간과 십이지를 다음과 같이 음양陰陽 및 오행五行으로 환원한다.

08시 1일 3월 2003년
時柱 日柱 月柱 年柱
천간 - 丙(陽/火) 癸(陰/水) 甲(陽/木) 癸(陰/水)
지지 - 辰(陽/土) 酉(陰/金) 寅(陽/木) 未(陰/土)

음양과 오행으로 환원시킨 다음, 음양의 조화 여부 및 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剋 관계 등을 살펴서 인간의 운명을 추리한다. 태어난 날짜(‘자연적 사실’)를 음양오행으로 환원시킨 후 그것을 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측한다는 것(‘가치 판단’)이 서구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의 오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인간, 이 세 가지가 셋이 아닌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합일사상, 즉 유기체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는 사주명리학에서는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사주명리학 말고도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에는 주역周易, 별점(점성술), 육임점, 자미두수, 기문, 풍수風水, 관상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사주명리학과 풍수학이 그 주류를 이루어 왔다. 풍수는 ‘空間의 논리’를 염두에 두고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時間의 논리’에 관심을 갖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던져진 개개인들의 길흉화복을 점쳐보려 한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1.3 사주명리학의 형성 과정

사주이론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이 한반도에 수입되면서 나름대로 변용된다. 사주명리학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는 현재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전무한 상황이다. 시중의 술사術士들이 써 놓은 술서류에 사주의 기원과 형성과정이 부분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고증되지 않는 황당한 내용들로서 신뢰하기가 어렵다. 사주이론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사正史인 《이십오사二十五史》에 수록된 〈오행지五行志〉와 〈열전列傳〉, 그리고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수록된 〈복서卜筮〉와 〈성명星命〉 도서들을 참고로 하여 재구성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사주 이론의 기원을 전국시대의 낙록자珞?子, 귀곡자鬼谷子,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 동방삭東方朔, 삼국三國시대의 제갈공명諸葛孔明, 관로管輅, 진대晉代의 곽박郭璞, 갈홍葛洪, 남북조 시대의 위령魏寧, 도홍경陶弘景으로 이어지는 인물에서 찾고 있으나, 현재의 사주이론 체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 그 구체적 관련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선구자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수나라, 당나라 때 사주이론체계가 이미 나름대로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음을 보면, 그것이 수당대隋唐代에 갑자기 형성된 이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주이론의 기본 개념들이 이미 수당시대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수서隋書》에 수록된 소길蕭吉이 쓴 《오행대의五行大義》 5권이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 오행과 십간 십이지…
제2권: 상생/상극/사시四時휴왕休旺/합合/형刑/해害/충衝…
제3권: 오색五色/오음五音/오미五味/오장五臟…
제4권: 율려律呂/칠정七政/…
제5권: 제신諸神/오제五帝/오령五靈…

《오행대의》 목차에서 언급된 개념들은 한나라 때까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한나라 이후 3∼4백년 동안에 형성되다가 최종적으로 수나라 소길에 의해 집대성된 것으로 보인다. 소길이 그렇게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박학다식함과 더불어 왕족의 후손으로서 풍부한 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소길에 의해 집대성된 사주 이론의 기본 개념들은 당대唐代에 이르러 사주 이론으로 나타난다. 당나라 때 이 사주명리학의 틀을 만들어 낸 사람은 이허중李虛中이다. 이에 대해서는 고증 가능한 문헌이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 때의 시인 한유韓愈가 이허중을 위하여 쓴 묘지명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이허중은 자(字)가 상용(常容)이다. 위(魏)나라 이충(李沖)의 8세손으로 아버지 운 과 어머니 진(陳)씨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진사에 급제하여 당나라 헌종 때 ‘전중시어사(展中侍御史)’라는 벼슬을 지냈다. (…) 그는 학문을 좋아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오행서에 심취하였는데, 사람이 처음 태어난 생년, 생월, 생일을 간지로 배속시키고, 상생, 상극, 왕성하고, 쇠퇴함을 짐작하여 인간의 수명의 장단, 부귀 빈천, 운의 이롭고 불리함 등을 추론했다.

이허중이 사주학 발달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허중은 현재 사주학의 기본원리를 이루고 있는 생극제화生克制化와 왕상휴수사旺相休囚死의 기초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허중의 사주명리학은 현대 사주학과 전체적인 틀은 같으나, 그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여준다. 현대까지 통용되고 있는 사주학은 이허중보다 한층 후세대 사람인 서자평徐子平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서자평의 정확한 생존연대는 고증이 불가능하고 당대唐代와 송대宋代 사이의 혼란기 아니면 송대宋代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서자평은 이전의 사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며 현대 통용되는 사주학을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이허중 이후 서자평 이전의 사주학은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년주年柱 두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일주日柱와 월주月柱를 보조자료로 하여 생극生克과 쇠왕衰旺을 살피거나 여기에 각종 신살神煞(역마살, 도화살…)을 대입하여 길흉화복을 점쳤으나 적중률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바로 이 점에 의문을 품고 서자평은 년주年柱가 아닌 일주日柱를 중심으로 하고, 또 그 가운데에서 특히 일간日干의 글자를 중심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글자들은 보조자료로 삼아 팔자를 해석하였는데 적중률이 탁월하였다고 한다. 서자평과 그 이전 사주학의 차이점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08시 1일 3월 2003년
時柱 日柱 月柱 年柱 (四柱)
천간 - 丙 癸 甲 癸 4字
지지 - 辰 酉 寅 未 + 4字

八字
↑ ↑
서자평 사주학 그 이전 사주학
日干 위주 年柱 위주
宋代 이후 宋代 이전

서자평의 저서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子三命消息賦註》이다. 〈낙록자삼명소식부珞?子三命消息賦〉는 《송사宋史》 〈예문지〉에도 언급되어 서자평에 관한 신빙성을 더해 준다.

서자평은 이 책의 주註에서 “사주팔자를 해독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 수 있으며, 생월, 생일, 생시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인간의 귀천과 수명의 장단 역시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하여 사주와 인간의 귀천이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자평이 사주명리학의 발달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는 ‘사주명리학’이 ‘자평술子平術’로 불렸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국의 4대 기서奇書로 꼽히는 《금병매金甁梅》에도 작중 주인공이 사주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사주선생이 사주를 “자평”으로 표기하고 있다. “저는 십삼가의 자평을 대강 깨달았고, 마의상법에 통하고, 육임신과를 알았으며, 언제나 약을 베풀어 사람을 구하고 재물을 아끼지 않으며 그때그때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평”이란 사주명리학을, “마의상법”이란 관상을, “육임신과”는 육임점을 가리키며 모두 운명 예측에 관한 것이다.

송대에는 서자평말고도 석담영釋曇瑩, 악가보岳珂補 등의 사주학자가 있어 이론을 발달시키는데, 석담영은 《낙록자부주珞?子賦註》란 책을 남겼으며, 악가보는 〈삼명지미부三命指迷賦〉란 글을 남겼다. 송대에 사주명리학이 크게 유행하여 “위로는 왕후장상王侯將相에서 아래로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사주학에 빠져들지 않는 이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송대 이후 운명 예측술에 있어서 사주명리학이 절대적인 위력을 보여왔던 것 같다.

서자평의 이론을 계승한 이가 서대승徐大升이다. 서대승은 《오행전도론五行顚倒論》과 《연해자평淵海子平》을 저술하였다. 특히 《연해자평》은 지금까지 사주학의 고전으로 통용되는 책이다. 《연해자평》은 당시 산재하던 사주학 이론서들을 집대성하였는데, 이 책의 특징은 ‘사주 여덟 글자 가운데 일간日干을 그 사람의 주체로 삼고서 인간의 운명을 해독해야 정확하다’는 서자평의 주장을 증명해 보인 점이다.

송대宋代에 현대 사주명리학이 완성된 이후도 이론의 발전은 계속되어 원대, 명대, 청대를 거치면서 사주명리학 내에서 다양한 유파가 경쟁적으로 형성된다.

몽고족이 중원을 지배하던 원대元代에는 《야율초재서耶律楚材書》, 《금당허실서琴堂虛實書》 등의 이론서가, 명나라 때에는 현재에도 사주명리학의 고전으로 통용되는 《적천수滴天髓》, 《명리정종命理正宗》 등이 나왔으며, 이 책들은 지금도 사주를 공부하는 이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청나라 때에는 더욱더 많은 사주명리학자와 책들이 등장하는데, 그 주요 인물과 저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진소암陳素菴: 《명리약언命理約言》
심효첨沈孝瞻: 《자평진전子平眞銓》
임철초任鐵樵: 《적천수징의滴天隨徵義》, 《적천수천미滴天隨闡微》
서락오徐樂吾: 저자 불명의 사주학 고전 《궁통보감窮通寶鑑》에 註를 달았음.
원수산袁樹珊: 《명리탐원命理探源》
위천리韋千里: 《고고집呱呱集》, 《명학강의命學講義》

특히 이 가운데 서락오가 주를 달았던 《궁통보감窮通寶鑑》은 청나라 말기에 나온 작가 불명의 책으로 현재 사주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필독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으로 인해 사주학이 자연과학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라고 하거나, ‘청대淸代에 나온 대표적 사주서이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주명리학은 수나라 당나라 때 그 이론의 토대가 갖추어지고, 송나라 때 현대 사주학의 원형이 형성되었으며, 원나라 이후 청나라 사이에서는 사주이론의 다양한 발전을 보게 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한반도에서의 사주 수용과 현주소

2.1 고려 이전의 사주명리학

중국에서 이미 당나라 때부터 사주명리학이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충분히 사주명리학이 한반도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으나 기록이 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일자日者, 일관日官의 점을 치는 내용은 기상이변에 대한 것으로 사주와는 관련이 없다. 또 일관 이외에 일자日者, 점후占候, 복서卜筮, 음양가陰陽家 등의 용어가 등장하나 그 전체적 맥락을 살펴보면 사주명리학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사주학이 완성되었던 송대에 고려와의 교류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사주명리학의 유입이 고려 왕조에서는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 생각되나 《고려사》에는 사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물론 고려 왕조에서도 인간과 한 집안 혹은 사회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학과로서 복학卜學=卜業이 잡과雜科에 포함되어 있었다. 복업卜業에 종사하는 관리들의 임무는 일식, 월식, 별들의 이상(星變), 기후이상, 가뭄과 홍수 등 기상현상을 관찰하며, 그에 따른 임금이나 왕실의 운명을 점치는 것이었다.

《고려사》 선거지選擧志에 잡과의 다른 과목들(明算業, 地理業, 醫業…)은 시험과목이나 시험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된 반면, 복업에 대한 시험과목이나 방법은 기록이 없어서 그 당시 점을 치던 방법이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사 열전列傳에 나타난 몇몇 인물들의 묘사에서 고려왕조에서 행해지던 점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한다.

고려 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운명예언가는 13세기 후반에 활동하였던 오윤부伍允孚였다. 《고려사》 열전에 소개된 오윤부이다.

오윤부는 (…) 충렬왕 때 여러 관직을 거쳐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가 되었다. 오윤부는 점후(占候)에 정통하여 밤이 다하도록 잠자지 않으며 비록 심한 추위나 성한 더위라도 병들지 않으면 하루 저녁도 그만두지 않았다. (…) 또 점을 잘하매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불러 시험하였으므로 더욱 유명해졌다. (…)

열전에 소개된 내용으로 보아 오윤부는 별점(星命)에 능했으며, 고려에서는 사주명리학이 아닌 별점이 주류를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려말의 고위 관리 박상충朴尙衷(禑王 때 인물) 역시 운명 예측에 탁월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고려사》에 기록하고 있다.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 성명(星命)에 통하여서 사람의 길흉을 점치면 많이 맞혔다.

이때는 이미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섰던 13세기 후반으로 중국에서는 사주명리학의 체계가 완성되어 다른 그 어느 운명예측술보다 인기를 얻고 있었던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에서는 사주명리학이 전혀 유행되지 않았던 듯하다.

흔히 역학易學을 고려에 최초로 들여와 ‘동방역학의 시조’로 불리는 우탁禹倬의 경우에서 고려말(14세기 전반: 충숙왕 당시 활동)의 사주명리학의 도입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고려사》는 우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탁은 경사(經史)에 정통하고 더욱이 역학(易學)에 깊으며 복서(卜筮)에 맞추지 아니함이 없었고 정전(程傳 : 程子學)이 처음으로 동방에 오매 능히 아는 자가 없는데 우탁이 이에 문을 닫고 한 달 이상 연구하여 깨달아서 생도를 가르치니 이학(理學)이 비로소 행하게 되었다.

“우탁이 복서에 맞추지 아니함이 없었다”는 내용에서 말하는 복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당시에는 이미 사주명리학이 다른 학문들과 함께 고려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다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사주명리학을 활용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추정이다. 왜냐하면 고려가 망하고 들어서는 조선 초기에 곧바로 “사주”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2.2 조선왕조에서의 사주 수용

조선 정사正史에서 사주를 맨 처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태종太宗편》이다.

태종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의 휘(諱)는 이방원(李芳遠)이요, (…) 태조(太祖)의 다섯째 아들이요, (…)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韓氏)이다. (…) 고려 공민왕 16년(서기 1367년) 정미 5월 16일 신묘에 함흥부 귀주(歸州)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한씨가 점치는 사람[卜者] 문성윤(文成允)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 사주(四柱)는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점장이[卜人]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 하였다.

당시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비록 고려의 무장이긴 하였지만 그 당시 고려 핵심 실세가 아니었다는 점과 개경이 아닌 변방 함흥에서 살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사주이론이 이미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의 유력자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잡과 시험에 사주명리학 서적들이 정식 고시과목으로 채택되는데, 조선 성종 16년(서기 1485년)에 완성된 《경국대전》에는 음양과(음양과)에 소속된 명과학命課學 고시과목은 다음과 같다.

경국대전(1485년)
初試: 袁天綱(背講), 徐子平, 應天歌, 範圍數, 剋擇通書, 經國大典(臨文)
取才: 袁天綱(背講), 三辰通載, 大定數, 範圍數, 六壬, 五行精記, 剋擇通書, 紫微數, 應天歌, 徐子平, 玄輿子平, 蘭臺妙選, 星命總話(臨文)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인 영조 46년(서기 1770년)에 반포된 《속대전》에는 다음과 같은 과목들이 명과학의 고시과목으로 지정된다.

속대전(1770년)
初試: 袁天綱(背誦), 徐子平, 應天歌, 範圍數, 經國大典(臨文); 天文曆法(臨文)
覆試: 初試와 같음

위 가운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열람 가능한 책들은 《원천강袁天綱》, 《서자평徐子平》, 《응천가應天歌》, 《육임六壬》이며, 중국의 《古今圖書集成》에 수록되어 있어 역시 그 내용이 파악 가능한 것은 《삼진통재三辰通載》, 《오행정기五行精記》, 《난대묘선蘭臺妙選》 등이다.

이들 명과학命課學 고시과목들 가운데 사주명리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응천가》, 《서자평》, 《원천강》이며 그 밖의 것들은 육임점, 별점, 자미두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응천가》, 《서자평》, 《원천강》 등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응천가》는 곽정郭程이 지은 것으로 알져져 있으며, 현대 시중에서 유통되는 사주명리학에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 ‘육십갑자납음오행六十甲子納音五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 밖의 내용들은 ‘포태법’, 신살神煞, ‘오행의 상생상극’을 기본 토대로 하는 것이어서 현대 시중의 사주명리학의 내용과 동일하다.

《서자평》은 사주 서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는데, 송대 사주이론의 완성자인 서자평의 이름을 그대로 책명으로 한 것이다.

이 책의 편찬자 서대승이 서문을 쓴 날짜를 “寶祐10월 望日”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간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보우寶祐는 중국의 남송南宋 1253∼1258년의 짧은 기간에 사용된 연호로서 고려 고종 임금 재위기간에 해당된다. 따라서 고려 고종, 즉 13세기 중엽까지는 이 책이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시중에서 역술인들 대부분이 수용하고 있는 사주명리학의 핵심적 내용들이 모두 수록되었는데, 그 핵심적인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당나라의 사주학이 태어난 년을 중심(年柱爲主)으로 하였음에 반해 이 책은 태어난 날을 중심(日柱爲主)로 하고 있다.
― 根苗花實論(태어난 해를 조상과 뿌리, 달은 부모와 싹, 날은 자신과 꽃, 시는 자식과 열매로 보는 논리)을 소개하고 있다.
― 육십갑자납음오행론六十甲子納音五行論을 비판하고 있다.
― 18가지의 격국格局과 더불어 당대의 유명 인사들의 사주 사례 소개하고 있다.

《서자평》의 내용은 현재 시중에 수용되고 있는 사주명리학의 내용도 더 이상 넘어설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즉 조선왕조 초기부터 중국 송대에 유행했던 사주명리학의 핵심 내용이 그대로 수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천강》은 현재에도 통용되는 신살神煞로 보는 사주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고려왕실에서 “사주”가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왕조가 바뀌면서 갑자기 조선 왕조의 명과학命課學 고시과목으로 “사주명리학”이 채택될 수 있는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주이론이 송나라 말엽인 13세기 후반에 완성된 체계를 갖추어 비록 고려 말엽에 고려에 유입되었을지라도 복업卜業의 새로운 고시과목으로 채택하기에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고려왕조로서는 너무 무력하였다.

둘째, 고려 왕조를 멸망시킨 조선 왕조의 새로운 ‘이념정책’이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제도와 이념에서 새로운 것들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교國敎를 불교에서 유교로 바꾼 것도 바로 그 하나의 예이다. 국교뿐만 아니라, 풍수학(지리학)의 고시과목도 고려왕조에서 채택한 것들은 모두 폐기 처분하고 새로운 과목으로 대체한 사실을 《고려사》와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을 비교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명과학 역시 그러하였다.그렇다면 조선왕조에서 사주의 수용은 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선 초기부터 사주명리학은 당시에는 한문과 음양오행설에 정통해야 했던 만큼 관상감 산하 명과학 소속의 전문기술인들 뿐만 아니라 당시 학식이 높았던 대신들이 수용했다. 조선 세종 임금 당시(서기 1425년) 변계랑卞季良이 사주를 볼 줄 알았다는 기록이 왕조실록에 나타난다.

임금이 대제학 변계량을 불러서 명하기를, ‘유순도(庾順道)와 더불어 세자의 배필을 점쳐서 알려라.’ 하였다. 계량이 약간 사주의 운명을 볼 줄 알았고, 순도는 비록 유학에 종사하는 자이나 순전히 음양 술수와 의술로 진출한 자였다.

세종 임금이 세자의 배필을 정하는데 사주를 활용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다른 예가 정조 임금의 경우이다. 정조 임금은 세자빈을 정하는 데 사주를 결정 근거로 삼는다. 당시 정조 임금은 국복國卜 김해담金海淡에게 세자빈 후보들의 사주가 어떠한가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오늘 간택한 처자들의 사주에 대해 묻는 것이니 그대들은 상세하게 아뢰어라. 기유년 5월 15일 유시(酉時)면 그 사주가 어떤가?”

이에 김해담이 답변하기를 “그 사주는 기유·경오·신미·정유이온데 바로 대길 대귀의 격입니다. 이 사주를 가지고 이러한 지위에 있게 되면 수와 귀를 겸하고 복록도 끝이 없으며 백자천손을 둘 사주여서 다시 더 평할 것이 없습니다.”

이 사주의 주인공은 안동김씨 김조순의 딸로서 훗날 순조비가 된다. 사주는 단순히 한 개인의 운명이나 배필을 구하는 데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권력장악의 도구로서 활용된다.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 임금은 아들이 하나뿐이었다. 당시 조정은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좌지우지하던 참이라 명종은 평생 눈물로 보낸 왕이다. 이때 문정왕후의 친정 동생 윤원형은 언젠가 자기 누나인 문정왕후가 죽게 되면 자신의 권력도 끝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일을 꾸민다.

명과학 소속 국복國卜 김영창金永昌과 모의하여, 황대임黃大任이란 사람의 딸의 생년월일을 좋은 사주로 고쳐서 세자빈으로 문정 왕후에게 적극 추천한다. 이때 왕과 왕비는 황대임의 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문정왕후의 분부에 눌려 할 수 없이 그대로 하였다(그러나 황대임의 딸이 너무 병약함이 드러나 훗날 세자빈이 교체된다).

조선 왕조에서는 이 밖에도 사주가 역모사건에 자주 언급되는데, 실제로 역모나 반정을 도모할 때 내세우게 될 주동인물의 사주가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 고려왕조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으로 주로 별점(星命)이 활용되었다면, 조선조에서는 사주명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왕실과 사대부에 국한되었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렇다고 하여 일반 백성들이 자신과 집안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빈천하게 살기에 더욱더 요행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 ‘당사주唐四柱’와 토정 이지함의 이름에 가탁한 ‘토정비결’류이다.

중국의 당나라때 유행하였다하여 ‘당사주唐四柱’로 붙여진 것으로 그 보는 법이 간단하여 지금까지도 민간에 널리 유포된 사주학의 아류이나, 중국의 정사正史나 《고금도서집성》,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정사나 문헌에 전혀 언급이 없다. ‘토정비결’과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에 민간에 유포된 것으로 본다. 사주명리학이 음양, 오행, 십간, 십이지라는 네 개의 범주를 고루 사용함에 반해 ‘당사주’는 십이지만 활용하여 인간운명을 추리하는 방법이다. 사주전문가들은 거의 무시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심심풀이로 자주 애용되는 방법이다. ‘토정비결’과 ‘당사주’에 대해서는 또 다른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2.3 해방이후의 사주명리학: 官學에서 ‘邪術’로

조선의 멸망과 더불어 공식적인 관학官學으로서 사주명리학은 사라졌다. 명과학 소속의 교수들로부터 강의를 받고, 초시와 복시를 거쳐서 선발되어 국가와 왕실의 주요 사건들에 점을 쳐야했던 만큼 교육 내용도 고도로 정밀했던 것이 조선조 사주명리학이었다.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과 해방이후 서구 합리주의 유입으로 사주명리학은 뒷골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비록 잡과이긴 하지만 조선조처럼 관리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 풍수학이나 사주학과 같은 ‘케케묵은 미신’에 해방이후 젊은이들이 매달릴 까닭이 없었다. 능력만 있으면 다양하게 더 좋은 직업의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1980년 이전까지 사주학이나 풍수학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 적응에 실패한 ‘좌절된 인생’들의 호구지책으로 활용되면서 사술邪術로 타락하게 된다. 학습능력을 갖추었으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또는 어떤 사유로 좌절된 인생들의 성격은 대개 ‘성격파탄’, ‘다중多重인격’적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 경우 더러 신기神氣를 띠면서 사주이론을 빌어 말하다보면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해 말해지는 사주학이나 풍수학은 그야말로 사술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이 사주명리학을 조선조 명과학 관리들처럼 체계적으로 교육기관을 통해 습득한 것도 아니었기에 사주명리학의 수준 역시 지극히 조잡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이들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학을 배웠다”느니, “큰 뜻을 품고 입산수도 하여 크게 도를 깨쳤다”느니, “이인異人을 만나 사주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느니 하면서 자신들의 책이나 광고에서 자신들을 소개하나 해방이후 우리 나라 사회여건상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자신들은 《자평진전子平眞詮》, 《적천수滴天隨》, 《명리정종命理正宗》, 《궁통보감窮通寶鑑》 등 현재 많이 읽히는 사주의 고전들을 해방 전부터 혹은 어려서부터 읽고 공부를 했다고 하나 이와 같은 책들은 1960년 전후까지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책들이었다.

최근에 대학 사회교육원과 각종 문화센터에서 인기 있는 강좌 가운데 하나가 ‘사주학’이다. 갑자기 쏟아져 나온 많은 강사들의 자질 또한 사주학의 올바른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특별한 공인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권 교육기관이 사주학 강사들을 배출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없다. 대학 사회교육원 강사들이 버젓하게 “대학교수”라는 명함으로 광고성 책들을 출간하거나 자신들을 소개함도 현재 일반인들의 사주에 대한 객관적 수용을 흐리게 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사주명리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역술인협회’에는 10만 여 명이 등록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등록되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 아마추어 등을 합하면 20만 명 이상이 사주명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제대로 실력을 갖춘 ‘사주 전문가’는 극소수이다. 어쨌든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가 사주서적이란 점과, 심지어 사주관련 월간지까지 발행되고 있음에서 사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사이비 술사들과 사술화의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박재완朴在玩(작고), 김재현金載炫(작고), 이석영李錫映(작고) 등 극소수가 나름대로 해방이후 사주학의 명맥을 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에는 이미 해방이후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이들에 의해 사주가 다시 쓰여지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법조인 출신으로 알려진 백영관白靈觀이 지은 《사주정설四柱精說》(1983)이다. 이후 《연해자평》, 《적천수》, 《명리정종》, 《궁통보감》 등 중국서적들이 번역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글세대가 ‘전통사상’으로 사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주명리학은 또 다른 전개과정을 겪고 있다.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사주업계도 역시 ‘온라인 사주’와 ‘오프라인 사주’로 나뉘어지면서 전자가 점차 그 수를 더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사주 관련 사이트는 100여 개, 취미수준의 사주 홈페이지까지 포함하면 1천 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익명성과 신속성이 있는 ‘온라인 사주’의 수요가 늘기는 하나, 개인이나 한 집단의 중대한 결정을 하려는 이들(정치인/ 기업인들)은 은밀하게 실력 있는 사주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일대일 상담을 하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주 시장’의 큰돈은 ‘오프라인 사주 전문가’들에게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사주명리학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과 학술적 평가, 혹은 이에 대한 비판적 수용 등은 제도권 학계에서 진지한 관심을 보여야 가능하다고 본다.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 혹은 동양철학 등의 학제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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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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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천 김석환 선생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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