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묵은해를 반성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한 해를 충실히 준비하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토정비결은 연초에 그해의 신수(身數)를 알아보기 위한 점복서 중 하나로 16세기 조선에 살았던 토정
이지함(土亭·李之함·1517∼1578)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디 그의 학문적 바탕이나 경향으로 보아 이러한 점복서를 남길 이유가 없다는 것과 토정비결이 우리의 세시풍속으로 정착된 것은 조선의 23대 왕인 순조(재위 1800∼1834년) 이후로 이지함이 살았던 때보다 훨씬 뒤라는 사실 때문에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지은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
● 생년월일 만으로 48괘 만들어 사용
토정비결은 주역과 마찬가지로 음양(陰陽)설로 구성되어 있으나 주역과는 차이가 있다. 주역은 우리가 타고난 생년, 생월, 생일, 생시인 사주에 양(陽)과 음(陰)을 합하여 64괘(掛)를 만들고, 이것을 이용하여 우주만물의 변화를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정비결은 사주 중 생시를 제외하고 생년월일만으로 3괘를 만들며, 64괘 중에서 48괘만을 사용한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주역은 인간의 수덕(修德·덕을 닦음)이 중심이지만 토정비결은 길흉화복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토정비결과 주역은 차이점도 있지만,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60진법이다. 이 둘은 음양의 2, 오행(五行)의 5, 천간(天干)의 10, 지간(支干)의 12가 융합되어 있다. 수학적으로 2진법인 음양과 더불어 동양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오행이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의 다섯 가지가 서로 순환하며 기운을 발한다는 사상으로 수학에서 5진법과 같다.
인간이 타고난 운명을 사주팔자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간이 들어 있다. 천간과 지간이 서로 순응하며 60개의 간지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테면 음력으로 2007년 1월 1일 0시에 태어난 아이의 사주는 정해(丁亥)년, 임인(壬寅)월, 계미(癸未)일, 갑자(甲子)시이다. 여기에서 팔자란 정, 해, 임, 인, 계, 미, 갑, 자이다. 천간과 지간 각각에는 고유한 음양과 오행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토정비결이다. 그리고 이들이 온전히 순환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기간이 바로 60년인데, 이것을 우리는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운명을 풀어나가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진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덕을 쌓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10진법은 인간의 손가락이 10개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큰 수의 필요성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어떤 물건의 개수를 세는 데 단순히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세는 것이 당연하고도 편리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쉽고 간단한 10진법을 놔두고 복잡한 60진법을 사용했을까? 그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많은 학자가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 60진법은 복잡한 소수계산 유리
10이라는 수는 60에 비하여 융통성이 덜한 수이다. 약수를 보면 10에는 2와 5뿐이지만, 60의 약수에는 2, 3, 4, 5, 6, 10, 12, 20, 30 등 (1을 포함해) 모두 열 개가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어떤 수를 2, 3, 4, 5 등의 수로 나눌 필요가 많이 발생한다. 이 중 4로 나누는 것을 쿼터(quarter)라 하여 지금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4로 10을 나눌 수 없으나 60은 나눌 수 있으므로 10진법보다는 60진법이 소수의 복잡한 계산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에는 계산기와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소수의 계산도 손쉽게 할 수 있지만 불과 100∼200년 전만 해도 소수의 계산은 상당히 번거롭고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실제로 수직선상에서 0과 1의 구간을 10등분하여 0.1, 0.2, 03,...,0.9, 1 등을 표시할 수 있고, 등분된 각각의 작은 구간을 다시 10등분하면 0.01, 0.02,...,0.09, 0.1 등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해 나아가면 분수로 표현된 수를 소수로 고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3이 10의 약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간단한 분수인 3분의 1조차도 소수로 나타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10진법의 약점이자 60진법의 장점인 것이다.
토정비결이나 주역의 괘를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지만 생활에 비추어 조심하고 삼가는 것은 필요할 듯하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